십승지(十勝地)/십승지 안내 및 지도

정감록(鄭鑑錄)

맹돌이2 2022. 11. 30. 05:42

『정감록(鄭鑑錄) 감결(鑑訣)』

 


정감록(鄭鑑錄)은 저자나 연대가 미상으로 미래의 국운을 대화 형식으로 예언한 도참서다.

고려와 조선조의 흥망을 예언하고, 정씨 왕조가 계룡산에 출현하여

800년 동안 도읍을 하면서 도탄에 빠진 민중들을 구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갖가지 전쟁과 폭정, 억압과 착취, 가난과 질병에 처한 조선 민중의 마음속에서는

해방과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과 위안을 심어 주는 것이었으며

동학혁명을 비롯해서 민중봉기의 이념적 사상을 심어주는 책이기도 했다.

 

정감록(鄭鑑錄)이란 성이 정씨(鄭氏)이고 이름이 감(鑑) 이라는 사람이 예언한 것이라는 뜻이다.

정감록 내용인 <감결(鑑訣)>의 원문과 이것을 해석한 책들을 참고하여 재구성 하였다.

 

완산백으로 임명된 한 융공(漢隆公)에게는 아들 셋이 있는데

큰아들은 일찍 죽고, 둘째 심(沈)셋째 연(淵)이 정감(鄭鑑)이라는 사람을 만나 8도를 유람하였다.

그런데 정감이라는 사람은 삼국지에서 나오는 유비의 은사(隱士)인 수경선생 사마휘나

지략가 제갈 공명보다도 더 나은 사람이었다.

 

이들은 경치가 빼어나고 기이한 금강산을 구경하면서

"천지는 음양의 주장으로 이루어 졌다"는 이야기를 서로 돌아가면서 하였다.

 

형인 심이 "산수의 법이 기이하고 경치가 참으로 빼어나 도다"라고 말하자,

정감이 대답하기를

"곤륜산으로부터 온 산맥이 백두산이르고 원기(元氣)가 평양에 이르렀지만

평양은 이미 지났고, 이제는 송악으로 옮겨졌다.

송악은 500년 도읍 할 땅이기는 하지만 요사스런 중과 궁녀가 난을 일으켜

땅의 기운이 떨어지고 천운(天運)이 다하게 되면 한양으로 원기가 옮겨질 것이다.

대강 살펴보건데 전쟁은 평정되지 않고 충신은 죽었으니 세상이 긴 밤중이로다.

교룡(蛟龍)은 남쪽으로 건넜는데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반드시 흰소(白牛)을 따라 종성(從城)으로 달아나야 한다." 라고 말했다.

 

심이 말을 받아 대답하기를

"내맥(來脈)의 운수가 금강산으로 옮겨진 다음 안동에 있는 태백산, 순흥에 있는소백산에 도착해서

산천의 기운을 뭉치고 계룡산으로 들어갔으니 이곳은 정씨(鄭氏)가 800년 도읍 할 땅이고,

다시 원맥(元脈)은 가야산으로 들어갔으니 이곳은 조씨(趙氏)가 1000년 도읍 할 땅이며,

전주(全州)범씨(范氏)가 도읍 할 땅이다.

또한 송악은 운수가 되돌아와서 왕씨(王氏)가 다시 일어나는 땅이다.

그러나 나머지는 자세히 알지 못해 말할 수가 없도다."

 

이어서 정감이 삼각운대에 앉아 말하기를

"어떤 해를 거쳐서 어떤 해에 이르면 지각이 있는 사람이 살고, 지각이 없는 사람은 죽게 될것이다."

라고 했다.

 

심이 "그 때가 언제인가?"라고 묻자

정감이 대답하기를

"너의 자손 말년에 궁중 과부가 모든 일을 자신의 뜻대로 하고,

어린 임금이 스스로 일을 내 맡기면 나라의 일은 장차 그르쳐지고

단신으로 의지할 데가 없어져서 집집마다 인삼이요, 마을마다 물방아요,

집집마다 급제하고, 사람마다 진사가 나올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될 것이며, 

후에 현인이 있어 이러한 일들의 잘못됨을 논하게 될 것이다. 

선비가 갓을 비뚤어지게 쓰고, 신인(神人)이 옷을 벗고,

주변(走邊)에 몸을걸쳐 성인(聖人)의 이름에 8자를 더하고, 

계룡의 돌이 흰색으로 변하고, 청포(淸浦)의 대나무가 흰색으로 변하고,

초포(草浦)에 조수(潮水)가 생겨 배가 다니고, 누런 안개와 검은 구름이 사흘 동안 천지를 덮고,

혜성이 진성(軫星) 머리에서 나와 은하수 사이 또는 북두(北斗)로 들어갔다가

자미원(紫薇垣)을 범한후 두미(斗尾)로 옮겨갔다가 

두성(斗星) 또는 은하 사이에 이른 후 남두(南斗)에서 그 끝을 마치면 

대중화(大中華: 중국)와 소중화(小中華: 조선)가 함께 망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심이 "삼각산이 규봉이 되고, 백악이 주산이 되고, 한강이 허리띠가 되고,

계락산이 청룡이 되고, 안현이 백호가 되고, 관악산이 안산이 되고, 목멱이 남산이 되었도다."

라고 말하자,

 

정감이 "도둑이 4번이나 들어 도둑질을 하지만 반드시 2번은 다시 일어설 것이고,

관악산이 안산이 되었으니 왕궁에 화재가 3번 일어날 것이며,

단우에 불꽃이 일어날 것이다. 위에서는 근심하고, 아래에서는 흔들릴 것이며,

아전이 태수를 죽일 것이고, 삼강오륜이 영영 없어질 것이다." 라고 말했다.

 

심이 "우리 세 사람이 서로 마주 하였으니 무슨 말인들 못하겠는가?

신년(申年) 봄 3월과 성세 가을 8월에 인천과 부평 사이에 밤에 배 1천척이 닿고,

안성과 죽산 사이에 송장이 산처럼 쌓이며, 여주와 광주 사이에 사람의 그림자가 영영 끊어지고,

수성과 당성 사이에 흐르는 피가 내를 이루며, 한강 남쪽 1백리에 닭과 개의소리가 없어지고,

사람의 그림자가 아주 없어질 것이다." 라고 말하자,

정감이 "장차 이 일을 어찌 할 것인가?"라고 탄식했다.

 

이에 심이 말하기를

"몸을 보존할 땅이 열 군데 있으니,

첫째는 풍기 예천이고,

둘째는 안동 화곡이며,

셋째는 개령 용궁이고,

넷째는 가야이며,

다섯째는 단춘이고,

여섯째는 공주 정산 마곡이며,

일곱째는 진천 목천이고,

여덟째는 봉화이며,

아홉째는 운봉 두류산으로 이곳은 영구히 살만한 땅이어서 어진 정승과 훌륭한 장수가 계속하여 날 것이고,

열째는 태백이다." 라고 하였다.

 

심은 계속하여 말하기를

"곡식 종자는 양백(兩白:태백과 소백)에서 구할 것이니

앞서 말한 열 곳은 병화가 들어오지 않고, 흉년이 들지 않으며, 백의적(白衣賊)을 만나면 결혼을 하고

형제처럼 되어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즐겁게 지낼 것이다.

영가 사이에 화기애애한 기운이 성하다고 하였는데 영가는 바로 대소백(大小白)이다.

금강산 서쪽과 오대산 북쪽은 12년 동안 적의 소굴이 될 것이고,

9년 동안 수재(水災)가 들며, 12년 동안 병란이 있을 것이니 누가 이 변고를 피할 수 있겠는가?

십승지(十勝地)에 들어가는 사람만이 그 때를 알아 살게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정감이 "해가 저물었으니 서쪽으로 돌아가자.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 라고 말하며

서쪽 암자로 돌아가니 경쇠 소리가 멀리 흰 구름 속에서 들려오고,

쏟아지는 폭포가 귀를 씻어주며 갖가지 형상의 구름이 산골짜기를 덮었다.

 

이튿날 세 사람은 금강산을 떠나 가야산에 이르렀다.

정감이 "후세 사람 중에 지각이 있는 사람은 먼저 십승지에 들어갈 것이니,

가난한 사람은 살고 부자는 죽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연이 "어째서 그런가?" 라고 묻자
정감이 대답하기를

"부자는 돈과 재산이 많기 때문에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과 같고,

가난한 사람은 재산이 없으니  어디에 간들 가난하고 천하게 살지 못하겠는가?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때를 살펴 행동해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심이 "황해도 평안도 두 서쪽 땅은 1천리 지경에 3년 동안 사람의 연기가 없을 것이고,

동쪽 산골 강원도 땅은 마땅 꺼려야 할 것이다." 라고 말하자,

정감이 "산과 물의 형세가 이러저러하니 천 년 후의 일을 자세히 알수 있다." 라고 말했다.

 

심이 "적이 전주에서 일어나 호중(湖中)의 진(津)과 화(華) 사이에서 세력을 키워

1만척의 배로 강을 가로막을 것이니 이것이 큰 재난이로다."라고 말하자,

정감이 "그것은 그렇게 큰 걱정거리가되지 않는다.

말세에 이르면 아전이 수령을 죽이는 일을 조금도 꺼려하지 않고,

위와 아래의 분별이 없어지며,  삼강오륜의 변이 계속해서 일어나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임금의 힘이 없어지고 나라가 위태한 지경에 이르러 비틀거리게 되면

대대로 국록을 먹는 신하는 죽음이 있을 뿐이다." 라고 말했다.

 

이어서 정감은 "말세의 재앙을 상세히 이야기하자면,

9년 동안 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은 나무껍질을 먹고 살 것이며,

4년 동안은 전염병이 돌아 전체 백성의 반 이상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사대부의 집은 인삼으로 망하고, 벼슬아치의 집은 이익을 탐하다가 망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연이 "후세에 미련한 사람들은 용문산을 은신하기에 적당한 곳으로 볼 것이다.

그러나 산수를 보는 법에 따라 살펴보면 용운산은 겉으로 드러나는 생기만 있을 뿐

모든 기운을 한양에 빼앗겼기 때문에 가운데의 기세는 모두 죽은 혈뿐이다.

따라서 후세 사람들이 이 산에 오면 오대산 북쪽 도둑들의 침범을 받아

1년도 못되어 일만 명에 달하는 목숨이 재가 될 것이다." 라고 말하자,

정감이 "산수 생긴 것이 이렇게 괴상하고 패역하니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말했다.

 

심이 "후세 사람들이 지각이 있어 십승지로 들어가려 하더라도

반드시 미련한 사람들이 말릴 것이다. 공과 사의 대소를 막론하고 길흉화복을 어떻게 말하겠는가?

참으로 형용하기 어렵도다." 라고 말했다.

 

정감이 말하기를

"계룡산의 돌이 희어지고, 평평한 모래밭 30리에 남문이 다시 일어나고,

너의 자손 끝에 쥐얼굴에 범의 눈을 가진 사람이 생기고,

때때로 흉년이 들고, 호환으로 사람이 상하고, 물고기와 소금이 지극히 천하고,

냇물이 마르고 산이 무너지면 백두산 북쪽에 있는 오랑캐의 말이 길게 울고,

평안도와 황해도 양서 사이에 원통한 피가 하늘에 넘칠 것이다.

한양 남쪽 백 리에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겠는가?" 라고 말했다.

 

연이 "목멱산은 해산하는 여자의 음부 형상과 같아서 사대부의 추행이 있으면

온 나라가 무례해질 것이니 이것을 어찌 하겠는가?" 라고 말하자,

정감이 "그것은 걱정할 것이 없다. 음풍을 막으면 황씨가 무후(無后)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

 

심이 "계룡산에 개국하면 변씨(卞氏) 정승과 배씨(裵氏) 장수가 일등 개국 공신이 될 것이고,

방성(房姓)과 우가(牛哥)가 수족과 같이 될 것이고,

대백과 소백 사이의 묵은 양반들이 복고할 것이니

후세 사람 중에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손을 대백과 소백 사이에 간직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감이 "대개 세상에 몸을 피하려면 산도 이롭지 않고, 물도 이롭지 않고  양궁(兩弓)이 가장 좋다.

너의 자손 끝에 나라 운수가 팔임(八壬)에 다하고,

목하(木下)에 어지러워지면 나의 자손에 의해 끝을 마치게 될것이다." 라고 말하자,

심이 "나의 자손이 너의 자손을 죽이고, 너의 자손이 나의 자손을 죽일 것이다." 라고 말했다.

 

연이 "십승지가 세상에서 피신하기에 가장 좋은 땅이나

새재(조령) 앞뒤의 큰길은 어찌할 것인가?" 라고 말하자,

 

정감이 "새재에 성을 쌓으면 큰 군사가 바다에 떠서 배를 타고 와서

남쪽으로 해서 전주로 들어가고, 호중(湖中)의 도둑 백성들이 당(黨)을 모으면

화(華), 진(津)과 양서의 백성들이 살해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열곳은 난리가 들어오지 않고, 흉년이 들지 않는 곳으로

이곳을 버리면 사람이 어디 살겠는가?

장씨(張氏)가 의병을 일으켜 난을 시작하는  시기가 경염(庚炎)이 있으니

지각이 있는 사람은 이때 십승지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먼저 들어가는 자는 되돌아오고, 중간에 들어가는 자는 살고,

나중에 들어가는 자는 죽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연이 이어서 "이 열 곳은 비록 12년 동안 병란이 있어도 피해가 없지만

육도(六道)의 백성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이 열 곳은 사면이 이러이러해서 흉년이 들지 않으니 참으로 산수의 법은 기이하다.

뒤에 지각 있는 자가 비록 빌어먹으며 들어가더라도 좋은 것이다.

신년(新年) 섣달과 임년(壬年) 3월에 일이 없으면 요행이고,

비록 일이 있더라도 들로 향하면 편안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연은 또한 "계룡산 남쪽 밖 네 고을 또한 백성들이 몸을 보존할 곳이다." 라고 말했다.

 

정감은 "이곳은 경기 강원보다도 낫고, 일이 허다하여 일일이 다 기록할 수 없다.

첫째는 풍기 차암 금계촌으로 소백산 두 물 골 사이에 있다.

둘째는 화산 소령의 고기로 청양현에 있으며, 동촌으로 넘어 들어간다.

셋째는 보은 속리산 증항 근처로 난리를 당해 몸을 숨기면

            만 명중에 한 사람도 다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넷째는 운봉 행촌(杏村) 이다.

다섯째는 예천 금당실로 이 땅에는 난리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임금의 수레가 이 땅에 다다르면 달라질 것이다.

여섯째는 공주 계룡산 유구 마곡 사이로 물 골 사이의 둘레가 2백 리나 되어 난을 피할 만 하다.

일곱째는 영월 정동쪽 상류로 어지러운 세상에 종적을 감출만하나

                수염이 없는 자가 먼저 들어가면 달라질 것이다.

여덟째는 무주 무봉산 북쪽동방 상동(相洞)으로 난을 피하지 못할 곳이 없다.

아홉째는 부안 호암(壺岩) 아래쪽이 가장 기이하다.

열째는 합천 가야산 만수봉으로 둘레가 2백 리나 되어서 영구히 몸을 보전 할 수가 있다.

            동북쪽 상원산(上元山) 계류봉 또한 가하다." 라고 말했다.

 

<출처> 범여의 세상사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