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대성골 - 작은세개골 - 칠선봉(1576m) - 덕평봉(1522m) - 덕평남릉 - 오토바이능선
◆ 지리산 화개지구
지리산의 주능선의 삼도봉에서 토끼봉, 명선봉, 삼각고지, 형제봉, 덕평봉,
칠선봉을 거쳐 영신봉까지의 남쪽 구간인 화동군 화개면 일대를 화개지구라 부른다.
이 화개지구의 가장자리인 삼도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불무장등능선과
영신봉에서 분기한 남부능선이 부채꼴 모양으로 에워싸고 있고, 그 중심에 화개장터가 있다.
화개지구에 위치하는 능선과 골짜기는
서쪽으로 부터 불무장등능선, 목통골(혹은 연동골), 토끼봉능선과 팔백능선, 왼골,
지보등능선, 산태골, 명선남릉, 절골, 형제봉능선, 천내골, 벽소령능선, 덕평골,
덕평남릉과 오토바이능선, 작은세계골, 칠선남릉, 큰세계골, 나바론계곡, 대성골,
수곡능선, 수곡골, 단천지릉, 단천골, 지네능선, 선유동골, 국사암능선, 내원골, 성제봉능선 등이다.
대성골은 지리주릉 세석평전의 서쪽 봉우리인 영신봉(1652m)에서 삼신봉(1289m)까지
남부능선이 물결처럼 유려하게 이어져 있는데, 그 오른쪽에 바라보기에도 아찔하게 깊이 파여서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지리산 화개동천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골짜기인 셈이다.
대성골은 수골골, 나바론계곡, 큰세계골, 작은세계골 등 여러 골짜기가 모여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아직도 인파에 시달리지 않은 한적함이 묻어있는 골짜기 이다.
대성골에는 협곡인데도 아기자기하게 계곡이 펼쳐져 있을뿐 폭포와 소가 거의 없는 편이나,
대성마을 민막집 앞의 수곡골 초입에 수곡폭포가 있기도 하다.
대성골은 1952년 백야전 빨치산 토벌당시 사면초가 격으로 포위당한 수백명의 빨치산들이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정충제님이 기록한 "실록 정순덕"과 이기형님이 쓴 "죽음의 골", 그리고 이태의 "남부군" 등에는
1950년대초 지리산 일대에서 치러진 군경과 빨치산과의 처참한 격전상황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대성골의 비극이 가장 격렬하고 처철했던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토벌대의 작전이 시작되면서 1월 17일경 지리산 골짜기에 함박눈이 퍼부었고 날이 저물자
빗점골, 거림골, 신흥 등지에 산재해 있던 빨치산이 대성골로 모여 들었다.
그때 대성골에 모인 빨치산은 사면초가 격으로 포위 당한채 처참하게 최후를 맞이 하였다.
대성골을 산행할려면 하동 화개면 대성교에서 시작되는 가파른 코스와
쪼금 위쪽의 의신마을에서 시작되는 평탄한 코스가 있으나, 1km쯤 지나면 하나로 합쳐진다.
의신마을에서 세석평전까지 9.1 km로 이어져 있고, 음양수샘과 통천문 사이의 삼거리갈림길에서
남부능선을 따라 세석평전이나 삼신봉으로 이어갈 수 있다.
▶ 대성골 민박집의 자연그대로 샘...
◆ 지리산 큰세개골, 작은세개골
칠선봉(1576m)은 영신봉과 덕평봉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일곱개의 암봉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마치 일곱 선녀가 노니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칠선봉의 아름다움은 구름이 산릉으로 넘어가거나 안개가 끼어 암봉들이 보일 듯 말 듯할 때가
가장 신비스럽고 환상적이다.
옛날 선비샘 아래 상덕평 마을에 평생 가난하고 천대받으며 살았던 노인이 죽으면서
유언을 남겼는데 죽어서라도 사람 대접을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의 자식들이 선비샘터 위에다 노인의 무덤을 만들었는데, 죽은 후에 사람들이 선비샘에서
물을 뜰때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게 되어 결과적으로 그 노인에게 절을 하게 된 셈이다.
칠선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능선을 칠선남릉 이라 하고
덕평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능선을 덕평남릉과 오토바이능선 이라 하는데,
칠선남릉의 동서쪽에 큰세개골과 작은세개골이 각각 위치해 있다.
큰세개골은 영신봉(1652m)에서 분기한 남부능선과 칠선남릉 사이에 위치한 골짜기 이고,
작은세개골은 칠선남릉과 덕평남릉과 사이에 위치한 골짜기 인데,
두 골짜기 모두가 대성골에 합류 되어 화개동천으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