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육영수 생가 탐방 (14-10-09)
★ 육영수 여사의 생애
옥천 교동집에서 작은 아씨로 불리던 육영수 여사는 1925년 11월 29일
아버지 육종관씨와 어머니 이경령 여사 사이에서 1남 3녀중 셋째로 출생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가정교육을 충실하게 받아 항상 예의가 바르고 침착한 성격이었다.
1938년 옥천 죽향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배화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며
학창시절 재봉과 수예 솜씨가 뛰어났으며, 요리에도 만다른 솜씨를 발휘하였다고 한다.
1942년에 배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동집으로 돌아와 집안일과 아버지 사업을 도왔으며
1945년 11월에 옥천여자중학교 가사 담당교사가 되어 학생들에게 수예, 도화(미술)등을 가르쳤다.
1950년 6·25전쟁 때 피난 온 부산집에서 송채천 소위의 소개로 박정희 소령과 처음 만나
그해 12월에 대구에서 결혼하여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이 되어 서울 남산 어린이회관 건립, 어깨동무 발간,
능동에 어린이 대공원을 만들어 미래의 꿈나무, 청소년 육성에 많은 열정을 쏟았다.
그리고 양지회 봉사활동 등을 통해 고통 받고 소외된 서민들을 위로하고 실의에 찬 국민에게
용기를 주는 등 헌신적인 영부인으로 활동하였다.
국민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영부인으로 살다가 1974년 8월 15일 제29회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문세광의 총탄에 맞아 운명 하셨다.
★ 육영수 생가의 역사
충북 옥천군 욱천읍 향수길 119에 위치한 육영수 생가터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여사가 1925년 11월 29일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냈던 곳으로,
이 집은 흔히 교동집(校洞宅) 이라 불려지던 옥천지역의 명가로서
1600년대 부터 김(金)정승, 송(宋)정승, 민(閔)정승 등 삼정승(三政丞)이 살았던 곳으로,
이 가옥은 1894년경에 축조되어 조시선대 상류계급의 건축구조를 대표할 수 있는 집이었다고 한다.
1918년 육영수 여사의 부친 육종관씨가 이 집을 매입한후
기단을 높이고 개축하였다고 전해지는데, 당시에 10여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며
사랑채, 내당, 사당, 별당 등이 팔작지붕의 형태를 지닌 가옥이었다고 한다.
1969년 현대건설에 의하여 전면적으로 개보수를 하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고,
1974년 육영수 여사 서거 히루 방치되어 오다 1999년 철거 되어 생가터만 남아있게 되었다.
2002년 4월 26일 충청북도 기념물 123호 옥천 육영수 생가로 지정 되었고,
옥천군에서 육영수여사 생가 복원 계획을 수립하여 2002년 육영수 생가지 지표조사를 실시하고,
2004년 12월 안채 복원공사를 시작으로 사업비 3,750백만원을 투입하여 건물 13동 및 부대시설을
2010년 복원하였으며 7월에 임시개관을 한 후, 2011년 5월 11일에 복원식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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