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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부용대-옥연정사-겸암정사-화천서원-병산서원 탐방 (22-09-25)

맹돌이2 2022. 9. 25. 21:55

안동 하회마을 부용대-옥연정사-겸암정사-화천서원-병산서원 탐방 (22-09-25)



9월의 넷째 토욜(9/24) 영등지맥 2구간 산행 하고 나서, 그 다음날 (9/25) 안동 하회마을을 감싸고 있는 낙동강 건너편에 위치한 부용정, 옥연정사, 겸암정사, 화천서원과 병산서원을 탐방 하고 나서 하회마을장터에서 안동찜닭+간고등어 맛기행을 즐겼다.



◆ 부용대(芙蓉臺)



소재지: 안동시 풍천면 광덕솔밭길 72 (광덕리 16-2)

부용대는 태백산맥의 맨 끝부분에 해당하며 정상에서 하회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높이 64m의 절벽이다.
부용대라는 이름은 중국 고사에서 따온 것으로 부용은 연꽃을 뜻한다. 하회마을이 들어선 모습이 연꽃 같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하회마을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 부용대라 부른다.
처음에는 ‘하회 북쪽에 있는 언덕’이란 뜻에서 ‘북애’라 불렸다.
아래로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 옥연정사, 겸암정사, 화천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 부용대 탐방사진




◆ 겸암정사(謙菴精舍)



소재지 : 안동시 풍천면 풍일로 181 (광덕리 37)
문화재 지정 : 국가민속문화재 제89호


겸암정사는 유성룡(柳成龍)의 맏형인 유운룡(柳雲龍)이 1564년(명종 19)에 지었다고 한다.
안동 하회마을 북쪽 화천(花川)을 끼고 우뚝 솟은 부용대(芙蓉臺)의 서쪽, 옥연정사(玉淵精舍)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다.

겸암 류운룡이 1567년에 학문 정진과 제자 양성을 목적으로 지었다. 겸암이란 당호는 퇴계 이황이 유운룡의 학문에 감복하여 지어준 것으로 이를 귀하게 여겨 자신의 호로 삼았다 한다.

화천 너머에 우뚝 솟은 부용대의 서쪽 강물이 크게 감돌아 굽이치는 절벽 위의 소나무 숲 속에 남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정사에서 내다보면 강 건너 모래사장과 송림 그리고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 겸암정사 탐방사진




◆ 옥연정사(玉淵精舍)



소재지: 안동시 풍천면 광덕솔밭길 86(광덕리 20)
문화재 지정 : 국가민속문화재 제88호

옥연정사(玉淵精舍)는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에 있는 조선 선조 20년(1587)에 완공된 건축물이다. 1979년 1월 26일 대한민국의 국가민속문화재 제88호로 지정되었다.

유성룡(柳成龍)이『징비록(懲毖錄)』(국보, 1969년 지정)을 집필한 곳으로 전하여오는 바, 그의 만년에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회마을의 화천(花川) 북쪽 부용대(芙蓉臺) 동쪽 강가에 자리 잡고 있어, 나룻배로 마을을 드나들게 되어 있다.

옥연정사는 대문간채·살림채·사랑채·별당채로 구성되고, 이들은 각각 독립된 채로서 一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대문간채는 동남향하여 정면 6칸, 측면 1칸이고, 이곳에는 측간(厠間)과 광들이 자리 잡고 있다. 대문간을 들어서면 안쪽 서쪽으로 동서향으로 면한 살림채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크기로 자리 잡고 있다.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 옥연정사 탐방사진




◆ 화천서원(花川書院)


소재지 : 안동시 풍천면 괏덕솔밭길 72 (광덕리 6-2)
문화재 지정 : 경상북도 천연기념물 제163호

유운룡(柳雲龍)의 학덕을 기려서 유림들이 현 위치에 세운 서원이다. 유운룡(柳雲龍)이 1601년(선조 34) 향년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185년 만인 1786년(정조 10)에 건립하여 9월에 유운룡(柳雲龍)의 위패를 봉안하고 1803(순조3년)에는 제자인 김윤안(金允安)과 종손자(從孫子)인 유원지(柳元之)을 배향시켜 100여 년 이상춘추로 향사를 지내오다가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에 의해 강당과 주사만 남기고 훼철되었다. 서원의 훼철을 아쉬워하던 후손들은 1966년부터 기금을 모아 사림들의 공론으로 1996년 5월 2일 복설 고유를 거행했다.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 화천서원 탐방사진




◆ 병산서원(屛山書院)


소재지 : 안동시 풍천면 병산길 386 (병산리 30)
문화재 지정 : 사적 제260호

병산서원의 전신은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豊岳書堂)으로 고려 때부터 사림의 교육기관이었다. 1572년(선조5)에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선생이 지금의 병산으로 옮긴 것이다.
1607년 서애가 타계하자 정경세(鄭經世) 등 지방 유림의 공의로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613년
(광해군5)에 존덕사(尊德祠)를 창건하고 위패를 봉안하여 1614년 병산서원으로 개칭하였다. 1620년(광해군 12)에 유림의 공론에 따라 퇴계 선생을 모시는 여강서원(廬江書院)으로 위패를 옮기게 되었다. 그 뒤 1629년(인조 9)에 별도의 위패를 마련하여 존덕사에 모셨으며, 그의 셋째 아들 류진(柳袗)을 추가 배향하였다. 1863년(철종 14)에 사액(賜額)되어 서원으로 승격하였다.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1868년(고종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보호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대대적인 보수가 행해졌으며 강당은 1921년에, 사당은 1937년 각각 다시 지어 졌다.
매년 3월 중정(中丁:두 번째 丁日)과 9월 중정에 향사례를 지내고 있다.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애 선생의 문집을 비롯하여 각종 문헌 1,000여 종 3,000여 책이 소장되어 있다.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 병산서원 탐방사진




● 하회마을장터 맛기행 사진